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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대청봉을 향하여2005년 10월 9일

 

우리나라는 국토의 7할이 산이다. 나머지 3할도 온전하게 들판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강이거나 넓은 의미의 산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한마디로 산악국가다. 우리국토를 한 낱말로 표현하면 ‘금수강산’이다. 우리나라는 강과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강산은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금수강산이다.
금수강산을 줄이면 금강산이다. 우리나라의 산은 모두 금강산이다. 이를 구별하면 금강산과 제2의 금강산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 곳곳에 제2의 금강산이 있다. 거제도 해금강이 그렇고 경주 제2 금강산이 그렇다.
우리 강산을 남북으로 나누어 놓고 비교해보면 명산은 북한에 더 많다. 금강산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엔 제1의 금강산이 있다면 남한엔 금강산에 버금가는 제2의 금강산이 있다. 남한에서 으뜸가는 산이다. 바로 설악산이다. 설악산은 금강산과 견주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명산이다.

 

이번 설악산 여행 중에 한 사람이 말했다. “금강산에 갔다 온 사람의 말로 이 곳의 경치가 금강산 보다 낫다고 합니다” 그렇다. 설악산은 다른 산과는 품격이 달랐다. 10여년 전 처음으로 보게 된 설악산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어떤 산보다도 강렬하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설악산이 금강산을 뛰어 넘지는 못할 것이다. 설악산 울산바위는 설악산과 금강산의 우열을 비교해주는 좋은 전설이다. 조물주가 천하의 기암괴석을 다 모아 금강산 일만이천 봉우리를 만들 때 울산바위도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길을 떠났다. 울산바위가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금강산이 다 만들어 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울산바위는 원통하기도 하고 부끄러워 돌아갈 생각을 잃고 설악산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외설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울산바위. 그 높이가 950m에 이르러 808계단을 올라가야 정상에 설 수 있는 동양 제일의 돌산이라고 한다. 울산바위에 얽힌 전설을 떠올려 본다. 탐관오리 울산현감은 신흥사 주지에게 울산바위의 세금을 받아갔다. 신흥사는 울산바위에 매겨지는 무거운 세금으로 말미암아 사세가 날로 쇠퇴해 갔다.
여기 한 슬기로운 동자승이 등장한다. 그의 기지로 세금을 바치지 않게 된 것이다. 세금을 받으러 온 울산 현감에게 동자승은 “바위를 도로 가져가든지, 아니면 바위가 앉은 곳의 자릿세를 내시오”라 했다. 만만찮은 울산현감은 “재로 꼰 새끼로 묶어 주면 가져가겠다”고 했다. 재로 어떻게 새끼를 꼴 것인가? 하지만 동자승은 속초 땅에 많이 자라 있던 풀로 새끼를 꼬아 울산바위를 동여맨 뒤, 새끼를 불에 태워 재로 꼰 새끼처럼 만들었다. 울산현감의 완패였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땅을 한자로 묶을 ‘속’자와 풀 ‘초’자로 적어 ‘속초’가 되었다고 한다.

명승절경을 찾다보면 바위벽에 수없이 새겨놓은 사람 이름을 보게 된다. 진주 촉석루 아래 암벽도 그렇고 합천 황강가의 함벽루도 그렇다. 고향마을 양천가 아사리덤 바위벽에도 내가 어릴 적 서당 사람들이 한시와 사람 이름을 새겨 놓았다. 경주 남산을 비롯한 반반한 바위엔 마애불을 새기기도 하였다. 오랜 옛날의 글씨도 볼 수 있지만 근현대에 들어와서도 글자를 새기기도 했다. 금강산이 그렇다. 금강산엔 온통 김일성 부자의 이름이 도배를 하고 있다지 않는가. 그렇지만 내가 둘러본 설악산에서는 바위벽에 새겨 놓은 글자를 보기가 힘들었다. 글자나 불상을 새기기 좋은 너럭바위는 너무도 많았지만 마애불상도 사람 이름도 새겨 놓지 않았다. 설악산 바위들이 다 불상인데 다시 또 불상을 새길 필요가 없었겠지. 하지만 공명심에 들뜬 이들의 찾지 않는 데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금강산은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교통도 좋아 쉽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설악산은 고개 너머 첩첩 산중 깊숙이 꼭꼭 숨어 있었다. 반면에 설악산은 오랫동안 금강산의 그늘에 가리어 있었다. 그리하여 설악산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인년 남북전쟁과 휴전으로 삼팔선이 아닌 휴전선이 새로 그어지면서 1953년부터 설악산은 남한 땅이 되었다.
‘닭 대신 꿩’이라고 제2의 금강산으로 불린 설악산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설악산 구석구석 기암괴석들은 금강산의 기암괴석의 이름이 붙여졌다. 사람들은 설악산에서 금강산을 보다가 차츰 설악산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젖어 들었다. 구름 속에서 고개를 내민 설악산, 그 아름다움이 금강산 못지않음을 깨닫게 된 사람들은 오늘도 설악산을 찾는다.

설악산이란 이름은 어떻게 유래가 된 것일까? 설악산이라면 눈 덮인 산, 설산이 아닌가. 석가모니가 왕궁을 벗어나 수도한 산도 설산이다. 설산 하면 깨끗하고 신성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한가위에 덮이기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 녹는다 하여 설악이라 한다” 하였고 <증보문헌비고>에는 “산마루에 오래도록 눈이 덮이고 암석이 눈같이 희다고 하여 설악이라 이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의 등산은 10월 9일 새벽4시부터 가벼운 일정이었다. 여러 사람 어울려 등산을 가면 급하게 서둘러 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오늘은 가다가 힘들면 개울가에 앉아서 발을 맑은 물에 담그고 쉬었다. 땀이 개이면 가다가 땀이 나면 개울가에 쉬면서 쉬엄쉬엄 산으로 올라갔다. 말하자면 게으른 산행이 된 것이다.


설악산엔 다람쥐가 참 많다. 다람쥐가 사람을 두려워 할 줄도 모른다. 먹이를 던져주면 겁도 없이 냠냠 찹찹 잘도 먹는다. 다람쥐는 좀체 볼 수가 없는 데 이곳 설악산엔 다람쥐가 아주 많다. 참 귀엽다.
문득 금강산을 등산하다가 다람쥐를 보고 작은 돌멩이를 주워 다람쥐에게 던져 다람쥐를 죽인 원불교 교조 소태산 대종사의 일이 생각난다. 성인도 장난기가 동했을까. 다람쥐에게 장난을 친다고 무심코 던진 돌멩이로 말미암아 다람쥐는 목숨을 잃는다. 소태산 대종사는 “평생 다람쥐 노릇만 해서 쓰겠는가? 평안도로 갈 것이다”라고 하였다는데. 금강산 다람쥐가 부처님이 나타남에 길가에 나와 제도해 줄 것을 애원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다람쥐는 평안도로 가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데 알 수 없는 일이다.

수렴동 계곡을 따라아픈 다리를 이끌고 대청봉으로 향했다. 가파른 고개를 올라간다. 대청봉에 갔다 오는 등산객을 만난다. 대청봉까지 얼마나 걸리느냐고 하니 두세 시간이면 갔다 올 수 있다면서 격려를 한다. 이렇게 몇 사람을 마주치고 지낸 뒤에 길가에 퍼지고 앉았다. M씨는 갔다 오자면 어두워질 것이라며 가기 싫어한다. 산지기를 만났다. 가지 말란다. 갔다오려면 세 시간은 넘게 걸린다며 한 마디 여유도 주지 않고 가지 말라고 한다. 잘됐다 싶은 M씨는 돌아가자고 한다. 소청봉 능선 도착 시간 아침 9시 헉헉. 배낭에서 오이, 가래덕 등 꺼내 먹고 한참동안 쉬었다. 시간 관계상 오늘 등산을 종지부를 찍고 하산하게 이르렀다. 고지가 바로 저긴인데 못내 아쉽다.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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