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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야기]고객정보 유출한 집배원, “문패만 있었어도”


얼마 전 신문·방송에 경기 고양의 40대 집배원이 기막힌 일로 경찰에 붙잡혔다는 기사가 실렸다. 집배원이 형사 입건될 정도의 잘못을 저질러 언론에 나오는 경우는 좀체 없기 때문에 내막이 궁금했다. 어렵사리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의외로 단순한 사건이다.

경기 고양시 일산 동구 풍동지역 아파트 1000여 가구를 새로 맡은 집배원 김모씨는 아파트 출입문 옆에 거주자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놓았다. 초인종 아래에 파란색 볼펜으로 깨알처럼 써놓은 자기만의 표식이었다. 그런데 자기 이름이 자신도 몰래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주민이 경찰에 신고하여 사건이 터진 것이다.

경찰은 김씨에게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김씨는 “등기우편물을 배달할 때 고객의 이름을 외우고 있어야 편리한데, 새로 맡은 지역이라 기억을 못해 적어놓았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등기나 소포 우편물은 우편함에 투입하기만 하면 되는 보통 우편물과 달리 수취인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이 우편물의 겉봉에 주소와 이름이 다르게 적히는 경우가 있다. 이때 초래되는 혼선과 낭비가 생각보다 크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주부 손모(45)씨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지난 2월 말 손씨 집에 설 선물이 뒤늦게 배달됐다. 보내는 사람이 수취인의 아파트 동호수를 잘못 적는 바람에 2주일 이상 이곳 저곳을 떠돌다 온 것이다. 손씨는 “겨울이었으니 망정이지 여름철 생선 선물이었다면 받자마자 버려야 할 뻔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경우 당초 집배원도 우편물에 적힌 주소대로 배달했으니, 잘못 배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소와 거주자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면 애초부터 엉뚱한 곳에 보내지 않고 주인을 찾아줄 수 있었을 것이다.

대개 고참 집배원들은 자기 구역 내 거주자 이름을 거의 외운다. 농촌 지역에서 오래 근무한 집배원이라면 뉘 집 개가 강아지 몇 마리를 낳았다는 것까지 꿰고 있다. 고양의 집배원 김씨가 초인종 아래에 거주자 이름을 적어놓은 것도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던 셈이다.

김씨는 자신의 그런 방식이 문제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거주자 이름을 적어놓은 것은 지난해 4~6월이다. 그 전 근무지에서도 같은 방식을 쓴 바 있다. 그런데 누구도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최근 잇따른 개인정보 유출사고였다. 옥션에 이어 하나로텔레콤 사태까지 터지면서 정보보호에 대한 경각심이 부쩍 높아진 주민들이 불안해진 것이다.

김씨의 행동은 고객의 동의 없이 임의로 고객의 이름을 노출시켰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유출이라고 할 만하다. 남의 집 벽에 볼펜으로 글씨를 써 미관을 해친 잘못도 있다. 그러나 업무상 목적 외에 다른 불순한 동기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큰 벌을 받을 사안은 아니다. 우정사업본부 김상원 우편배송팀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전국 우체국에 공문을 보내 “유사한 일이 없는지 점검해서 고객의 불만을 사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할 것”을 지시했다.

이번 사건은 집배원의 업무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어느 집에 누가 산다는 것조차 개인 정보라는 이유로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세상에서 집배원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

김씨가 유출했다는 개인 정보라는 것도 뒤집어 생각하면 문패다. 집집마다 문패만 있었다면 김씨가 구태여 문앞에 거주자 이름을 써놓고 외우려고 애쓸 까닭이 없다.

문패는 “이곳에 내가 산다”고 만천하에 공지하는 것이다. 나의 거주지 정보를 당당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우편제도 시행 초기인 1897~1906년 구한국 시대에는 문패 다는 것을 법으로 강제한 적도 있다.

농촌 지역에선 문패 달아주기 운동을 지금도 미덕으로 간주한다. 경북 경산시는 국가유공자의 집에, 충북 청주시 상당구는 친절 주민에게 문패를 달아주었고, 충남 연기군은 군민 1000가구에 문패를 달아준 적이 있다. 이런 문패 달기는 본인 동의를 전제로 하니 개인 정보 ‘노출’에 해당된다. 본인 동의 없이 이뤄지는 개인정보 ‘유출’과는 구별되는 것이다.

문제는 정보보호가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무엇이든 감추려드는 풍조다. 출퇴근길에 매일 마주치는 이웃집 아저씨인데도 이름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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