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손편지 쓰는 비효율적인 삶을 꿈꾸다 /조갑룡
‘무술년 새해는 시 사랑 아름다움 낭만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게 곧 삶의 목적이니까요’라는 요지의 연하장을 보냈다. ‘이렇게 손으로 꼭꼭 눌러쓴 엽서를 받아 본지가 언제이던가. 이 남자의 정체가 궁금하다!!’라는 카톡이 왔다. 내가 손으로 쓴 연하장이 이웃들의 마음을 출렁여 그 파도가 새로운 놀라움이 되어 되돌아 왔다.
나는 연하장 말고 매년 300통 이상의 손편지를 보내고 있다. 20여 년 전 장학사 시절, 그 당시 우표 150원에 편지 한 통의 위력이 대단함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수업발표대회 심사위원으로 어느 고등학교에 갔었는데, 아이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는 수업에 감동하고 돌아와 ‘선생님처럼 수업 잘하는 분 별로 본 적이 없다. 더욱 열심히 해서 부산교육의 초석이 되어 달라’는 손편지 한 통을 보냈다. 얼마 후에 ‘당신 같은 장학사 처음 봤다. 부산의 과학교육 발전을 위해 더욱 매진해 달라’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답장이 왔다. 뜻밖의 개운함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 후 1년여의 세월이 흘러 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지인의 상가(喪家)에 들렀다가 학교 후배를 소개받았다. 통성명을 하면서 악수를 하는데 그 후배가 나의 이름을 재차 묻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나의 손을 붙들고 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연인즉슨, 그 후배는 내가 감동한 수업을 하신 선생님의 남편이었고, 아내에게서 들은 얘기 때문에 손편지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단다. 이게 편지쓰기의 발단이었다.
4월에는 청라언덕이 있는 ‘동무생각’을 같이 듣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고, 11월에는 김사인의 시 ‘조용한 일’을 적어서 보내기도 한다. 만년필의 사각거리는 소리는 내 영혼을 간질일 뿐만 아니라 나의 미세한 속내를 생생하게 전달하여 상대방을 들뜨게 하는 것 같다.
지난해 연말, 미국 보스턴에 있는 제자가 어린아이처럼 또박또박 쓴 편지를 보냈다. 어릴 땐 연말마다 카드를 써서 보내는 게 큰일 중 하나였는데, 언제부턴가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편해지면서 생사나 확인하는 한 줄 메시지에 만족하고 있는 게 참 아쉽단다. ‘저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게 될 제자들에게 선생님 자신이 멋진 선물이 되어주시길 소망합니다. 2017년 12월, 조갑룡 선생님께 제자 은정이가 보내 드립니다’라는 구절에서는 그리움에 북받쳐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연말 대목이고 그쪽 사람들이 느린 것 때문에 우체국에서 거의 한 시간을 줄 서서 기다렸단다.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정호승의 ‘또 기다리는 편지’처럼, 편지는 사랑이고 배려이며 기다림이다. 편지는 서로의 삶에 대한 자세와 내면의 풍광을 통해서 정서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고, 마음을 열어주는 아름다운 열쇠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유치환의 ‘행복’처럼 상대방의 가슴을 설레게 할 것을 생각하며 편지를 들고 우체통으로 향하는 걸음은 그 자체로 설렘이다.
그런데 빨간 우체통이 해마다 줄고 있다. 1973년 말에 1만7609개이던 것이 1993년에는 5만7599개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해서 줄어 2016년에는 1만4026개였고, 2016년 한 해에 철거된 우체통만 하더라도 894개였다. 3개월간 우편물 수집 물량이 없는 경우 그 우체통은 철거된다. 그러면 그 자리를 소셜미디어가 조용히 접수한다. 나는 ‘일 년에 300통 이상의 편지 보내기’를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진다. 우리 아파트 입구에 있는 빨간 우체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인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원장님께선 손편지의 소중함을 잊어간다고 안타까워하시지만, 매일 매일의 전쟁통에 사는 제겐 우표와 편지지 사고 우체통 찾고 그래야 한다면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것 엄두도 못 낼 듯해요. 이메일로 저의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다 전해 드릴 순 없어도….’ 나는 답장 편지를 이렇게 썼다. ‘새삼스럽게, 펜으로 편지를 쓰는 비효율적인 삶을 꿈꾸는 것은 어리석은 욕심일까요?’
전구가 세상을 덮고 있지만 양초는 살아서 낭만적인 용도로 사랑을 받고 있듯이, 소셜미디어가 점령한 이 세상에서 손편지가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하여 시와 사랑, 아름다움과 낭만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도록 하였으면 좋겠다.
부산영재교육진흥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