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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야기]‘남의 실수가 나의 행복’인 우표

 
2008 12/30   위클리경향 806호

러시아 항공첨쇄 에러, 바덴 색도 에러, 루스벨트 손가락 에러, 대한제국 독수리 우표 에러, 콜럼버스 지도 에러 (왼쪽부터 시계방향)

'실수가 돈이다’라고 하면 “그게 무슨 헛소리냐”는 반문이 돌아올지 모르겠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는 말은 있어도 실수가 직접 돈이 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개 실수는 돈이 아니라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긴다. 중요한 순간의 결정적 실수라면 참담한 패배와 뼈아픈 후회를 준다. 바둑에서 한 수의 실수는 승부를 좌우하고 전쟁에서 한 번의 실수는 목숨을 좌우한다. 어떻게든 실수는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우표의 세계에선 실수가 돈이 된다. 실수로 잘못 만들어진 우표는 정상 우표보다 훨씬 값어치가 나간다. 짝퉁이 정품보다 비싼 것이다.

그 이유는 물론 희소성 때문이다. 우표에서 만약 실수가 발견되면 발행 당국은 그 즉시 회수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때마다 회수 그물망에 걸리지 않고 시중에 흘러나가는 게 몇 장씩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 우표는 지구 상에 몇 장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수집가들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자연히 부르는 게 값이 된다. 실제 세계 경매시장을 놀라게 하는 빅 거래도 열이면 여덟아홉은 에러우표다. 우표 제작자의 실수가 수집가의 행복이 되는 분야가 우표 세계인 것이다.

우표닷컴에 따르면, 얼마 전 미국 옥션에서 1935년에 발행된 러시아의 항공첨쇄 에러우표(사진 1)가 62만5000달러(1달러=1500원일 때 9억3700만 원)에 낙찰됐다. San Fransico(샌프란시스코)를 나타내는 f자가 거꾸로 첨쇄된 우표로, 지금까지 10장만 발견된 희귀우표였다. 지난 4월 스위스 옥션에서는 1851년에 나온 독일 바덴의 색도 에러우표(사진 2)가 무려 110만 유로(19억 원)에 팔렸다. 유럽 우편사를 통틀어 한 장밖에 없는 귀중한 우표라는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어도 수집가들의 인기를 끄는 에러우표는 많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은 모나코 항공우표(사진 3)다. 모델로 등장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손가락을 실수로 6개로 디자인한 것이다. ‘역사상 가장 바보 같은 우표’라는 오명이 붙어 있는 이 우표는 그러나 많은 분량이 유통돼 생각만큼 가격이 비싸지는 않다.

단순 실수가 아니라 역사적 인식이 부족해 생기는 에러우표도 있다. 콜럼버스의 대륙 발견을 기념해 만든 미국 우표(사진 4)에서 콜럼버스가 둥근 모양의 지구를 가리키는 게 그 예다. 당시 지도는 평평한 모양만 있을 뿐이어서 콜럼버스가 둥근 지구를 사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전국은 붉다’는 구호를 내걸고 발행한 우표는 발행 하루 만에 회수됐다. 본토는 붉은색을 입히면서 대만은 흰색으로 칠하는 바람에 대만을 중국의 영토라고 해온 그동안의 주장과 모순됐기 때문이다.

에러우표가 돈이 된다면 일부러 에러를 범하면 될 것 아닌가. 의도적으로 에러우표를 내면 우표 발행 당국과 우표수집가 모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고 문외한들은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게 나오는 에러우표는 시장에서 큰 가치가 없다. 자칫 우표 발행 당국의 명예만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북한과 같은 후진국에서 우표를 편지에 붙이는 게 아니라 오로지 외국 수집가들에게 파는 용도로 찍어 팔다가 신용 기반을 깎아먹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우정청은 에러우표를 이벤트성으로 발행한 적이 있다. 1901년 나온 판암 엑스포 에러우표를 기념하기 위해 100년이 지난 2001년 당시 모양을 도안으로 해 우표를 발행한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우표는 우편용이 아니라 기념품용이라고 못박음으로써 의도적 에러우표를 남발한다는 인상은 주지 않았다.

우리의 경우 에러우표는 손꼽을 정도밖에 없다. 외국 수집가들의 에러리스트에는 대한제국 때인 1903년 나온 독수리 우표(사진 5) 정도가 올라 있다. 우표 속 독수리가 왼쪽에 받치고 있는 지구에서 일본을 섬 하나로 그리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우리 우정 당국이 이 정도로 일처리를 빈틈없이 한다는 뜻일까. 믿음직스럽긴 하지만 신용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국부도 창출하는 방법은 정말 없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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