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빼앗긴 생일, 정보통신의 날
얼마 전 통계청에서 온 이메일을 보는데 흥미로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축하해주세요. 통계청에 기쁜 일이 생겼습니다. 9월 1일 통계의 날이 정부기념일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통계 문외한인 사람들에게 이런 메일을 다 보냈을까 싶다. 정부 기념일이 대체 무엇이기에?
정보통신의 날 되찾기를 내걸고 식목행사를 가진 지식경제부 공무원노조.
달력을 보면 무슨 날 무슨 날 하고 적힌 게 생각보다 많다. 국경일은 빨간 색으로 표시돼 있어 쉽게 눈에 띄지만 그렇지 않은 기념일은 숫자 아래 검고 작은 글씨로 씌어 있어 각별히 관심갖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부기념일은 엄격하게 법으로 관리된다.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라는 대통령령에 모든 기념일의 날짜와 주관부처, 행사 내용이 규정돼 있다. 예컨대 납세자의 날(3. 3)은 기획재정부, 상공인의 날(3월 셋째 수요일)은 지식경제부, 향토예비군의 날(4월 첫째 금요일)은 국방부, 보건의 날(4. 7)은 보건복지가족부를 주관부처로 명시하고 있다. 또 물의 날(3. 22), 기상의 날(3. 23), 법의 날(4. 25), 환경의 날(6. 5), 건설의 날(6. 18), 경찰의 날(10. 21)도 있다. 이런 정부기념일을 합하면 40종으로 여기에 이번에 추가된 통계의 날을 포함하면 모두 41종이 된다.
이들 기념일은 거의 해당 분야 정부 부처가 문을 연 날, 아니면 업무를 개시한 날이다. 통계의 날도 우리나라 근대 통계의 출발점이라고 할 호구조사규칙을 칙령으로 발표한 1896년 9월 1일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정했다. 그러니까 기념일은 해당 분야 종사자들에게 생일과 같은 것이다.
정보통신의 날(4. 22)은 누구의 생일인가. 이 문제를 놓고 1년째 다투고 있지만 정부 내에서 정리하지 못해 관련 분야 종사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는 게 이 글을 쓰는 이유다.
4월 22일은 1884년 고종이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행정 관서인 우정총국을 개설하라고 칙령을 내린 날이다. 이 땅에 우정(郵政)의 역사가 시작된 날이니 두말할 것도 없이 우정업무를 다루는 우정인과 우정사업본부의 생일이다. 과거엔 이 날을 아예 ‘체신의 날’이라고 불렀다. 기념일의 명칭이 정보통신의 날로 바뀐 것은 우정업무를 관장하던 체신부가 1995년 정보통신부로 개칭한 데 따른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엔 집배원의 날(5. 31)이 따로 있었으나 체신의 날에 흡수됐다.
우정사업본부가 정통부 소속 기관일 때는 정보통신의 날이라고 해서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정통부가 해체되면서 정보통신 업무는 새로 생긴 방송통신위원회로 넘어가고 우정사업본부는 지식경제부 소속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정보통신의 날’의 주관부처가 방통위로 정해졌다. 정보통신 업무를 다루는 곳에서 정보통신의 날을 관장한다는 논리다. 기념일의 역사성은 무시한 채 기념일의 현재 명칭만 보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바람에 우정사업본부는 120년 이상 이어오던 생일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꼴이 됐다. 그래서 우본은 방통위에 “우리 생일을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행정안전부와 총리실 같은 관계부처에도 하소연했지만 지금까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1년이란 세월이 흘러 또 한 번의 정보통신의 날을 맞이한 것이다.
기념일이 되면 정부 부처는 해당 분야 발전에 공로가 있는 공무원과 민간인에게 훈·포장을 주고 내부 직원들과 떡이라도 나눠 먹으면서 자축 행사를 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지난해 정보통신의 날 우본은 훈·포장을 일절 주지 못했다. 올해는 훈·포장 대상자를 방통위와 절반씩 나눠서 선정하고 기념행사는 각자 치르기로 했다. 임시 방편의 타협을 한 것이다.
우정에 직접 관계가 없는 국민의 눈으로 보면 기념일의 주관부처가 어디로 정해지는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념일마다 역사가 있고 의미가 있는데 아무나 생일상을 차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처의 탄생 배경이나 역사가 전혀 다른 방통위가 근대 우정의 창시일을 생일이라며 기념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우정사업본부 직원들의 단체인 지식경제부 공무원 노조는 지난 4일 식목행사를 하면서 그 명칭을 ‘우정 125주년 기념 정보통신의 날 되찾기를 위한 행사’라고 붙였다. 생일을 빼앗긴 우본 직원들의 허탈감이 얼마나 컸으면 이랬을까 싶다.
이종탁<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출처 2009 04/28 위클리경향 82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