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편지 한 통에 목숨 바친 집배원
지금으로부터 83년 전인 1923년 7월 22일 전북 전주우체국. 아침부터 장맛비가 내렸지만 이시중 집배원은 아랑곳않고 우편물 가방을 어깨에 메고 배달에 나섰다. 지금의 전주시 평화동 2가 일대인 우림면·나전면이 그의 배달구역. 그러나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쏟아진 폭우로 개울물이 넘쳐 건너갈 수가 없었다. “이를 어쩌나” 궁리하던 집배원 머릿속에 한 가지 방도가 떠올랐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겠다.”
그는 건너마을에 보낼 편지를 가방에서 꺼내 돌에 묶었다. 그런 다음 건너마을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 “여보세요, 여기 좀 와주세요.” 건너마을 주민들이 개울가에 나오자 집배원은 편지 묶은 돌을 개울 너머로 던졌다. 그러나 편지는 개울을 넘지 못했다. 돌에 묶인 끈이 빗속에 풀려버린 것이다. 편지는 물에 빠져 집배원 눈앞에서 물에 떠내려갔다.
이 집배원은 즉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편지묶음을 손에 움켜쥐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급류를 헤쳐나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손에 편지를 쥔 채 몸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결국 그는 바위에 걸려 숨진 채 발견됐다. 한국 우정사상 최초의 집배원 순직이다.
역사적 사건인 만큼 순직자와 순직 경위에 대한 연구 및 홍보, 추모사업 등이 있을 법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했다. 당시 전주우체국장인 오주다 가메가스라는 일본인이 추모비를 세웠으나 관련 기록은 6·25 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이가 몇 살인지, 가족은 누가 있는지, 우체국 일은 언제 어떻게 시작했는지 정보가 없다. 대략적인 순직 경위를 비문을 보고 짐작할 뿐이다.
그가 숨진 지 51년이 되던 1973년 3월, 체신부는 전주에 있는 추모비를 서울 체신기념관으로 옮겨 왔다. 이때 일부 언론에서 ‘이시중 집배원의 유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캠페인을 벌였으나 찾지 못했다. 최초의 순직 집배원은 그래서 지금까지 무연고로 남아있다.
그로부터 57년이 지난 1980년 충남 서산군 안면도우체국에서 또 한번 사람들을 울린 집배원 순직사건이 발생했다. 최초의 순직이 한여름철 수마(水魔)에 의한 것이라면, 이번엔 한겨울 눈(雪)에 의한 사고였다. 이 우체국 오기수 집배원은 그해 12월 12일 악천후 속에서도 배달구역을 돌면서 배달을 거의 마쳤다. 남은 우편물은 5원짜리 우표가 붙은 농민신문 한 부. 주소지는 마을에서 10㎞쯤 떨어진 산간 외딴집이었다.
영하 15도의 추위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져 있는 상태. 그러나 오 집배원은 아랑곳않고 산속으로 들어갔고, 마지막 한 통의 우편물을 수취인에게 전했다. 수취인은 “날도 어두워지고 눈보라도 심하니 자고 가라”고 권했다. 그러나 오씨는 “연말이어서 우체국에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고, 내가 안 들어가면 동료들이 걱정한다”며 길을 나섰다. 그러나 그 길로 우체국에 돌아가지 못했다. 다음날 우체국 동료들이 찾아 나섰을 때 그는 벼랑 밑 눈속에 파묻혀 숨진 채 발견됐다.
만국우편연합(UPU)은 다음해 기관지를 통해 ‘편지 한 통에 목숨 건 집배원’ 기사를 실었다. 당시 체신부는 그가 숨진 안면도 해변가에 ‘1980년 12월 12일 악천후 속에 마지막 우편물을 전하고 집배원 이곳에 지다’란 푯말을 세웠고, 안면도우체국은 ‘한 통의 편지 위한 님의 정성, 우리 온 가슴에 길이 남으리’라고 새긴 추모비를 세웠다.
이들 집배원이 아니어도 우정을 위해 일하다 순직하는 사람은 매년 늘어난다. 공식적으로 순직 처리된 사망자가 지난해에만 4명, 지금까지 모두 392명이다. 여기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지는 못해도 2000년 이후 20년 이상 근무한 뒤 사망한 직원까지 합하면 순직자는 481명에 이른다. 이들의 이름은 충남 천안의 지식경제공무원교육원에 세워져 있는 순직 우정인 합동위령비에 적혀 있다.
올해에는 이시중·오기수 집배원의 추모비도 이곳으로 옮겨졌다. 오 집배원에게 추서된 훈장 등 관련 사료들은 교육원 내에 있는 우정박물관에 전시된다. 일반인의 접근성이 높아진 것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얼마 전 이곳에서 노사 합동으로 순직 우정인 추모행사를 가졌다. 우정인들은 “오늘날 우체국이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것은 모두 당신들의 땀과 헌신 덕분”이라며 고인의 영령 앞에 머리 숙였다.
2011 04/12ㅣ주간경향 920호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