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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태안 봉사활동… '최고의 교과서'

학생들에게 가장 훌륭한 교과서는 무엇일까? 교육현장을 포함해 20년이 넘도록 교육계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다 보니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학생들이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또 진지하게 학습을 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교과서는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과서 말고도 우리 주변에는 살아 있는 매우 유용한 ‘교과서’가 많다. 신문이 ‘국민생활의 생생한 교과서’로 불리는 것도 한 예일 것이다. 나는 지난 1월 학생들과 함께 최고의 교과서를 체험했다. 바로 기름 유출 사고가 덮친 충남 태안군 소원면 모항항을 68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다녀왔다.

한국환경청소년 서울연맹(사무총장 박성열)의 행사로 서울시내 초·중·고 25개교에서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참석했다. 이른 아침 서울에서 출발할 때만 해도 학생들에게는 진지함이 별로 없어 보였다. 봉사활동 점수도 얻고, 방학 기간마저도 학원에 매달려야 하는 등 공부로 찌든 일상에서 일탈한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자원봉사 장소로 결정된 모항항 인근의 해수욕장에 도착해서도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생각보다 깨끗한 해변과 평범하기까지 한 겨울바다는 오히려 운치가 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코끝으로 살짝 기름 냄새가 풍기고, 몇몇 나무가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왔음직한 높이만큼만 꼭 시커멓게 죽어 있었지만 여기가 기름 재앙의 현장이라는 느낌이 확 와닿지 않았다. 봉사활동 준비작업을 하면서도 장난을 치며 소풍 분위기에 젖어 있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해변으로 내려가 본격적인 기름제거 작업을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일순 바뀌었다. 언듯 멀쩡한 해변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자갈밭을 헤쳐보면 온통 기름투성이였다. 특히 굴착기로 모래를 파낸 뒤 벌이는 기름제거 작업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땅속에는 모래보다 기름이 많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파헤친 구덩이에 양수기로 바닷물을 쏟아 부으면 기름이 떠올랐다. 흡착포로 계속 걷어내도 기름은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기름 냄새가 천지를 진동했다.

학생들은 진지해졌다. 물구덩이 위에서 기름을 걷어내고, 헌 옷가지로 열심히 기름을 닦아냈다. 추운 날씨이지만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다들 열심이었다. 이태관(가락고 1)군은 “솔직히 이곳에 온 목적은 지겨운 학원 수업을 빠지려는 것이었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해안 오염 실태를 보니 부끄러움을 느꼈다”면서 “정말 여기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별(은곡중 3)군도 “처음엔 잘 몰랐는데 바닥 돌과 굴착기로 뒤집어놓은 모래와 함께 쏟아져나온 기름을 보고 그 심각함에 할 말을 잃었다”고 했다.

자원봉사장에서 만났던 한 교사는 “솔직히 평생 봉사와는 담을 쌓고 살았는데 오늘 정말 크게 깨달았다. 머지않아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올 생각”이라며 “이 중요한 체험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위기(危機)와 기회(機會), 이 두 단어는 같은 ‘기’ 자를 쓴다. 기름 유출 사고가 피해어민들의 잇단 자살로 이어질 정도로 우리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줬지만 한편으론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훈도 적지 않다. 여럿이 힘을 합하면 큰 힘이 된다는 평범한 진리가 서해안 곳곳에서 시현되는 것이다. 땀방울을 흘리며 환경의 소중함을 현장에서 배운 것만도 잊을 수 없는 값진 자산인 것이다.

모두 태안으로 달려가자. 태안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을 위해서 말이다. 특히 우리 아이들, 학생들에게 태안이라는 좋은 교과서를 꼭 체험하게 해주자. 부모와 함께라면 더 좋을 것이다.

유범진 한국환경청소년 서울연맹 부연맹장
-출처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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