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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찍는 우편배달부 명재권씨

아주 2008.05.18 14:33 조회 수 : 1131

가슴으로 찍는 우편배달부 명재권씨

여수 골목들을 손바닥 안에…“손으로 쓴 편지가 아쉬워요”

명재권(41)씨는 전남 여수시의 집배원이다. 지식경제부 산하 우정사업본부 여수우체국에서 일한다. 그는 2002년부터 7년째 여수의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소식을 전하고 있는데, 지금은 봉산동, 경호동, 국동 일부와 우두리 등 4개 지역을 중심으로 배달업무를 맡고 있다. 큰 가방 대신 오토바이 짐칸 큰 상자에 우편물을 싣고 다닌다.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랬지만 요새는 편지는 거의 없다고 한다. 손으로 쓴 편지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군대간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중엔 손으로 쓴 게 간혹 있어요. 초등학생이 과제물로 ‘선생님에게 편지쓰기’를 하는 경우도 있죠. 그외엔 거의 없어요."

집배원들 사이엔 불문율이 있다.  손으로 쓴 편지는 그 정성이 고와서 주소가 잘못 기재되었더라도 반드시 찾아준다. 우편물 중에 가장 많은 부류를 차지하는 것은 홍보성 인쇄물이다. 그 중에서도 손으로 쓴 것은 어쩐지 정감이 간다고 명씨는 말한다.

명씨는 배달이 빨리 끝나 짬이 날 때 사진을 찍는다. 쉬는 날엔 주로 사진을 찍으러 다닌다. 사진을 시작한 것은 5년쯤 된 것 같다고 한다. 꽃이니 곤충이니 접사를 찍고 싶었는데 생각만 하고 있다가 어느날 홈쇼핑 광고를 보고 콤팩트카메라를 샀고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흉내내면서 꽃을 찍었다. 어느 순간 한계를 느꼈는데 장비를 바꾸면 해소될 것 같아 2006년에 덜컥 DSLR을‘질렀다’. 그랬더니 그 때부터 사진을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전남대 여수캠퍼스 평생교육원에서 15주동안 사진반 강의를 들었다.

아직 한참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진에 도전하는 기분입니다. 일반인들이 쉽게 감흥하는 소위 '달력사진' 도 찍고 싶고 테마가 있는 사진도 찍고 싶습니다."

직업이 가져다 준 선물 ‘부지런한 발과 따뜻한 가슴’

기자는 사진을 배우는 수강생들에게 사진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을 이야기하곤 한다. 머리나 꼬리 없이 핵심적인 단어만 남아 격언 혹은 금언에 가까운 말들이다. 이런 금언들은 귀에는 들어오지만 마음에는 잘 와닿지 않는 경우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아직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얼마쯤 지난 뒤 문득 그 말이 가슴에 와닿을 때 그 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됐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자가 애용하는 사진가 덕목의 하나는 "사진은 부지런한 발과 따뜻한 가슴으로 찍는다" 란 것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을 예로 들 것도 없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여러가지를 보면 좋은 사진을 찍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거기에 ‘따뜻한 가슴’이 반드시 곁들여져야 효율성이 높아진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찍는다는 것은 발품을 팔면서 다니다가 발견한 대상을 보면서 감흥이 일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명재권씨는 ‘부지런한 발’은 그저 확보가 된 셈이다. 집배원은 싫든 좋든 사시사철 같은 골목, 같은 동네를 다녀야 한다. 눈을 감고도 해당 지역을 외울 정도가 되어야 한다. 게다가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날마다 만나다 보니 동네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알고 이웃처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다. 요즘엔 손 편지는 잘 없긴 하지만 어지간한 가족사 정도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시간에 집에 늘 없는 사람은 거의 만날 수 없지만 만나는 사람은 수시로 마주치게 된다는 것은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에겐 대단한 장점이다.

명씨는 경호동을 5년째, 봉산동을 4년째 찍고 있다. 주말에도 자주 시간을 내서 동네 주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어느 집에 숫가락이 몇개 있는지" 알 정도다. 경호동 사람들은 명씨가 나타나면 사진에 대한 주문도 한다. "이것도 찍고 저것도 찍고 꽃도 찍어라"고 한단다. 아는 사이일수록 예의를 갖춰야 하는 법이어서 싫다고 하면 찍지 않는다.

"평소 모습을 담아두고 싶습니다. 욕심은 있으나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그냥 찍기만 하는 수준입니다." 

많은 생활사진가들과 마찬가지로 명씨도 처음엔 꽃을 찍었다. 4년전 경호동에서 처음으로 인물을 찍을 때가 아직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이었어요. 골목에서 남매가 쭈그리고 앉아 있길래 ‘사진 찍어줄까’하고 다가갔더니 아래집 아이도 찍어달라고 했어요. 나중에 사진을 뽑아서 줬더니 부모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더군요." 그 뒤로도 사진을 찾아준(인화해준) 것이 모두 30여명 가까이 된다. 동네 사람들의 반응이 나쁠 리가 없다. 제법 친해진 사람들은 먼저 찍어달라고 나서는 경우도 왕왕 있다. 

-출처 한겨레/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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