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우편 특권 아시나요
"편지의 규격 요건을 다음과 같이 개정 고시합니다.”
얼마 전 우정사업본부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띄운 내용이다. 편지 규격도 국가에서 고시하나 싶어서 우편법령을 찬찬히 읽어보니 흥미로운 내용이 줄줄이 발견된다. 편지 크기는 물론 겉봉에 주소와 우편번호를 쓰는 자리와 크기가 모두 법으로 고시하는 사항이다. 우편번호의 숫자 하나하나는 6.5㎜ 크기로 써야 하고, 보내는 사람의 우편번호는 봉투 왼쪽 끝에서 10㎜, 받는 사람의 우편번호는 아래쪽에서 17㎜를 띄어서 써야 한다는 수치까지 정해져 있다.
그러고 보니 이번 고시도 우편물의 요금납부 표시 영역에 시각장애인용 표시를 인쇄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장애인을 위한 점자 표시조차 우편물에는 함부로 할 수 없게 돼 있는 것이다.
얼핏 실생활과 동떨어진, 규제를 위한 규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편물을 원활히 취급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이라는 게 우정사업본부의 설명이다. 규격에 맞지 않는 우편물은 기계적으로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편물 자동처리기는 아주 사소한 위반에도 작동을 멈추기 일쑤다. 예컨대 편지에 스테이플만 찍혀도 장애를 일으킨다. 우편물 규격 고시 중 봉투의 봉함 방법으로 풀이나 접착제 대신 스테이플이나 핀, 리베트의 사용을 금한다고 명시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우편번호를 5도 이상 비뚤어지게 기재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도 있다. 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제재할 수는 없지만 기계가 판독하려면 번호가 똑바로 쓰여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편번호를 아예 쓰지 않으면 규격 외 우편물이 된다. 우편번호를 쓰지 않은 죄를 물어 요금을 부과한다. 물론 이 역시 현실에서 적용하기는 어렵다. 우편번호가 없는 편지가 우편함에 들어 있을 때 추가요금 90원을 물리겠다고 발송자를 찾아갔다간 일만 번거롭고 우체국 이미지도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가 읽지 못하는 우편물은 사람 손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우편법에는 기계 처리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우편물을 우대하는 조항도 수두룩하다. 우편은 국가가 독점 취급하는 공공재이니만큼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나온 조치들이다. 우리가 모르는 우편의 특권 5가지만 살펴보자.
① 통행료를 내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우편법 제5조 1항은 우편 업무를 수행 중인 집배원과 차량이 도로의 장애로 통행이 곤란할 때 담장이나 택지, 전답 등을 통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남의 논밭을 사전 허가 없이 달릴 수 있는 통행권을 법으로 보장한 것이다. 또 5조 2항은 운하, 도로, 교량 등의 장소에서 통행요금을 지급하지 않고 통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추석 때처럼 급하면 먼저 통과한 뒤 요금 보상은 나중에 해도 된다는 것이다.
② 언제든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우편법 4조는 우편 집무 중인 차량이 사고를 당해 우편운송원이나 집배원이 조력을 청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편물을 실은 차가 언덕을 올라가다 시동이 꺼졌다고 치자. 집배원이 지나는 사람에게 “차 좀 밀어달라”고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도와준 사람이 보수를 요구하면 상응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
③ 우편물은 마지막까지 보호받는다 우편물을 운송하는 차량·선박·항공기는 우편물을 다른 화물에 우선해 취급해야 한다. 만약 사고가 나서 화물을 바꿔 실어야 할 상황이 되면 우편물을 다른 것보다 먼저 싣고 내려야 한다. 재난 상황이 심각해져 보유 화물을 부득이 처분해야 할 때에도 우편물은 맨 마지막에 처분하도록 우편법에 명시돼 있다.
④ 음란물은 배달하지 않아도 된다 건전한 사회질서를 해치거나 우편물의 안전한 송달을 저해하는 음란물·폭발물·독극물 등은 우편 취급이 부적절한 ‘우편금제품’으로 지정된다. 이런 물건은 배달은 물론 우편 접수조차 거절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얼마 전 캐나다 우정공사에서 음란물 배달 거부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만들었는데, 우리는 이미 갖춰져 있는 것이다.
⑤ 특권 침해하면 벌금 위에서 예를 든 우편물의 통행권·조력청구권·우선보호권 등을 위반할 경우 벌금 100만 원에 처한다고 우편법 47조는 규정하고 있다. 여태껏 이런 죄를 적용한 예가 없으니 국민이 모를 뿐이다.
<이종탁 경향신문 논설위원> jtlee@kyunghyang.com
-출처 2008 09/23 뉴스메이커 79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