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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야기]우편번호의 고민

아주 2009.05.07 23:50 조회 수 : 824

[우정이야기]우편번호의 고민
 
우편번호에 따라 우편물을 분류하는 모습.
"아빠, 우리 집 우편번호가 뭐예요?”
“글쎄 모르겠네.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오겠지.”
보통 가정이라면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흔히 이런 대화가 오갈 법하다. 가장이라도 자기 집 우편번호를 외우지 못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자기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 두 가지는 이런저런 문서를 작성할 때 꼭 써넣어야 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우편번호는 필수 기재 항목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외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외국에선 우편번호가 주소의 일부다. 자기 집 주소를 적을 때 우편번호도 함께 기재하는 게 보통이다. 이력서에도, 행정관청의 문서에도, 학교에 내는 등록서류에도 우편번호를 함께 적도록 돼 있다. 그러니 누구나 자기 집 우편번호를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우편번호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우편법 시행령 6조에는 “우편물의 외부에는 발송인 및 수취인의 성명·주소와 우편번호를 기재해야 한다”고 돼 있다. 우편번호를 쓰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법적 의무사항인 것이다. 그러나 어겼을 때 어떻게 한다는 처벌조항이 없다. 그 때문에 우체국에선 우편번호를 안 쓴 우편물도 빠짐없이 배달해준다.

다만 우체국 입장에서 그런 우편물은 큰 부담이다. 우편물을 접수-분류-발송-배달하는 데 우편번호는 꼭 필요하다. 우편물을 구분하는 기본 코드가 우편번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편번호가 써 있지 않은 우편물은 우체국 직원이 수작업으로 써 넣는다. 그만큼 시간과 인력 소모가 큰 것이다.

우편번호의 의미나 규칙은 나라마다 다르다. 우리는 6자리 중 앞의 3자리를 발송지역, 뒤의 3자리를 배달지역을 구분하는 데 쓴다. 서울 광화문우체국의 우편번호 110-110을 예로 들면 맨 앞의 1은 서울, 10은 종로구를 나타내며 뒤의 110은 상세 지역과 집배순로(順路)를 의미한다. 110 우편물을 전담 배달하는 집배원을 두는 식이다.

미국은 발송지를 구분하는 5자리에 배달용 4자리를 더해 9자리 우편번호를 쓴다. 뒤의 4자리는 특정한 구역, 빌딩을 가리키는 것으로 필수 기재 사항은 아니지만 기재하면 더 정확히 배달된다는 이점이 있다.

우편번호라고 해서 숫자만 쓰는 것은 아니다. 캐나다, 영국, 네덜란드 등 9개 나라는 숫자와 문자를 같이 쓴다.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우정공사의 우편번호가 K1A 0B1인 식이다. 영국 하원의 경우 SW1A 0AA이다. 우편물을 분류할 때 OCR카드에서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6글자(D F I O Q U)는 우편번호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흥미롭다.

근대 우편제도를 처음 시행한 나라는 영국이지만 우편번호는 1941년 독일에서 처음 도입했다. 이어 1959년 영국, 63년 미국이 도입했고, 우리나라는 1970년에 시행했다. 2005년 2월 현재 우편번호를 쓰는 나라는 117개국. 홍콩, 파나마, 아일랜드 같은 작은 나라를 빼면 대부분 우편번호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것이다.

우정사업자에게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면 우편번호가 고정불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허허벌판에 빌딩이 들어서면 주소와 우편번호를 부여해야 하고, 어떤 지역이 개발되어 송달되는 우편물이 갑자기 늘어나면 집배구역을 새로 조정해야 해 번호를 바꿔야 한다. 이런 일이 보통 한 해에 4~5차례 되는데, 모두 관련법에 따라 고시하도록 돼 있다.

우정사업본부(우본)는 얼마 전 서울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 상림마을 1-14단지 아파트의 우편번호를 122-720에서 122-738로 바꾸는 등 595곳의 번호를 신설·조정한다고 고시했다. 우편번호가 바뀌면 이메일로 알려달라고 등록해놓은 고객이 8만 명이다. 이들 외엔 거의 변경 사실을 모를 것이니 한동안 우편번호를 잘못 적은 우편물 때문에 집배원들은 더 고행을 하게 생겼다.

더 큰 문제는 2012년 새 주소를 시행할 때다. 현재의 우편번호는 지번체계로 돼 있어 5만 개로 커버할 수 있지만 새 주소는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이뤄져 있어 30만 개는 있어야 표현할 수 있다. 새 주소체계에 맞게 우편번호를 전면 개편해야 하는 것이다. 우본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종탁 <출판국 기획위원> jtlee@kyunghyang.com
 
-출처 2009 05/12   위클리경향 8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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